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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시사상식

에펠탑. 교황청. 문화재. 정선. 오구라 컬렉션

by 안전제일무사고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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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상징’ 에펠탑, 부식 심각 ▲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이 부식에 시달리고 있다. 7월 4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가디언 등 외신은 에펠탑이 빠르게 부식되고 있어 전반적인 보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밀 보고서가 최근 프랑스 언론에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부식방지 전문 회사 엑스피리스(Expiris)가 2014년 작성한 해당 보고서는 프랑스 잡지 ‘마리안느’가 입수해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펠탑 표면의 전체 페인트층 중 10%만이 정상이며, 나머지 부분은 페인트층이 벗겨져 6300여 톤의 철이 외부에 노출돼있다. 또한 엑스피리스는 2016년에 다른 보고서를 작성해 에펠탑에 884개의 결함이 발견됐고, 그중 68개는 구조적 결함이라고 분석했다.

엑스피리스 대표이자 에펠탑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인 베르나르 지오반노니는 마리안느와의 인터뷰를 통해 “난 이 탑과 관련해 수년째 작업을 하고 있다. 2014년에 부식을 해결하는 게 극도로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마리안느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기존 페인트층을 완전히 제거한 뒤 부식을 보수하고 다시 도색랄 것을 권고했으나 에펠탑 운영사를 소유한 파리시의회는 페인트를 덧칠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에펠탑은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한화 약 811억원의 비용을 들여 도색 중이다.

■ 에펠탑 효과(Eiffel Tower dffect)
에펠탑 효과는 특정 대상에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다가도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그 대상과 오랫동안 함께 지낼수록 호감을 갖게 된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단순노출효과(more exposure effect)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혐오스럽다고 비판을 받다가 나중에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의 상황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1889년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프랑스 파리에 처음 에펠탑을 세웠을 때 에펠탑은 파리 시민들로부터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모파상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 곳이란 이유로 때때로 에펠탑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함께 겪으면서 에펠탑은 어느덧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간접 광고(PPL, Product in Placement) 역시 에펠탑 효과를 염두에 두고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사려하는 것이다.




▲ 교황, 중국과 맺은 주교 임명 협정 옹호...올 10월 갱신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5일9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맺은 주교 임명 협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과 중국이 맺은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를 옹호하며 오는 10월 협정 시한 연장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018년 교황청과 중국 정부가 맺은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는 중국 정부가 교황을 세계 가톨릭교회의 초고 지도자로 인정하는 대신, 교황청은 중국 당국이 자체 임명한 주교를 승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2년 기한의 합의안이다.

대략 1200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중국에서 는 사제와 주교가 당국의 관리 아래에 있는 교회에서만 배출됐고, 협정 체결 이전에는 교황청이 이를 인정해오지 않았다.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는 중국과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교황의 의중이 실린 교황청 대중 정책의 산물이다.

2018년 10월 발효된 이 협정은 2020년 시효과 한차례 연장됐다. 다시 그 기한이 다가오면서 교황청과 중국 측이 추가 연장 협정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교계 일각에서는 해당 협정이 중국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 교황청과 중국의 외요 관계
교황청과 중국의 외교 관계는 중국 공산당 정원 수립뒤인 1951년 단절됐다. 이후 중국은 1980년대부터 ‘자선자성(自選自聖)의 원칙’에 따라 교황청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 통제하에 사제와 주교를 세우는 ‘천주교애국회’와 바티칸이 인정하는 ‘지하 교회’ 조직이 오랫동안 분열돼왔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교황청과 중국과의 관계 회복은 급물살을 탔다. 2018년에는 중국과 교황청이 주교 임명 문제를 잠정 타결 지으며 외교관계 정상화에 다가섰다.




▲ 美·日서 되찾은 우리 문화재 40점, 국내 최초 일반 공개 ▲
겸재 정선이 환갑 무렵 그린 진경산수화 ‘금강내산전도’가 공개됐다. 1925년 한국을 찾은 독일의 성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 대원장이 이 작품이 포함된 ‘겸재정선화첩’을 수집해 반출했다. 2005년 성 오틸리엔 수도원이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화첩을 영구대여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반환하면서 ‘금강내산전도’는 8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7월 7일부터 9월 25일까지 해외로 반출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문화재를 소개하는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겸재 정선 화첩을 포함해 환수 문화재 40점을 선보인다. 2012년 창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현재까지 6개국에서 784점(기증 680점, 매입 103점, 영구대여 1점)에 이르는 우리 문화재를 환수했다.

전시는 1~3부로 나눠 진행되는데 1부 ‘나라 밖 우리 문화재’에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역사를 소개한다. 1913년 일본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으로 불법 반출됐다 93년 만인 2006년 되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대표적이다.

조선 태도 때부터 철종 때까지 472년간 역대 왕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오대한사고본’은 761책 전부가 일본에 반출됐는데 관동대지진으로 상당수를 잃고 남은 47책만 정부의 노력 끝에 반환됐다.

종묘에 봉안된 왕실문화유산인 고종의 국새 ‘황계지보’ 역시 6·25전쟁 때 도난당해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한미 공조 수사와 외교적인 노력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2부 ‘다시 돌아오기까지’에서는 하나의 문화재를 원래 자리로 반환하기 위한 재단과 정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7년 프랑스 경매 시장에 출품된 ‘문조비신정황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을 매입해 국내로 반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819년 신정왕후를 왕세자빈으로 책봉하며 제작한 이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었으나 어느 순간 행방이 묘연해졌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돼왔던 왕실 유물이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재단 관계자들은 프랑스로 가 경매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과 미국에서 환수한 문화재 3점이 처음 공개된다. ‘나전매화, 새, 대나무무늬 상자’는 정방형 상자 표면에 매화, 대나무, 모란 넝쿨무늬가 조합된 18·19C 자개 상자로 2021년 일본 개인 소장자에게서 직접 매입했다.

1722년 조선시대 왕들의 글씨를 수록한 ‘열성어필(列聖御筆)’과 조선 후기 도자기 ‘백자동채통형병’은 올 3월 미국 경매에서 사들였다. 현재까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 등 나라밖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21만4208점에 이른다.

■ 정선(鄭敾, 1676~1759)
정선은 조선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운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 오구라 컬렉션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 1896~1964)rk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 1100여 점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구라는 대구에서 전기회사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1921년부터 마구잡이로 한반도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그는 수집한 유물을 밀항선에 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오구라는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를 설립해 유물을 관리했고, 1982년 그의 아들은 유물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오구라 컬렉션에는 그림과 조각, 공예, 복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 시기의 한국 유물이 포함돼 있으며 이 가운데 신라금동관모 등 39점은 일본의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때문에 1960년대 초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당시 한국 정부는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민간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나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이상 오구라 컬렉션은 민간 소장품이 아니다.

-애드윌 시사상식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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