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서 산화한 형제, 73년 만에 나란히 현충원에 ▲
6·25전쟁에서 전사한 형제가 전쟁 발발 73년 만에 현충원 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국방부는 6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유가족, 정부 주요 인사, 군 주요 지휘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故) 김봉학 일병(형) 안장식을 거행했다.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동생인 김성학 일병 바로 옆에 묻힐 예정이다. 국방부는 두 사람을 ‘호국형제’로 명명했다. 6·25 전쟁 전사자 형제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히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 2015년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의 유해가 나란히 안장된 이후 8년 만이다.
김성학 일병의 유해는 전사 직후 수습돼 1960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지만, 형인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찾지 못해 현충원에 위패만 모셔둔 상태였다.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지난 2011년 강원도 양구군 월운리 수리봉에서 처음 발굴됐고, 2016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수습됐다.
김봉학 일병은 1951년 9월 5일 5사단 35·36 연대와 미 2사단 9 연대가 북한군을 상대로 수리봉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피의 능선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햇다. 동생 김성학 일병은 국군 8사단 21 연대 소속으로 평안남도 순천 인근까지 진격 후 중공군의 2차 공세로 38선까지 철수했다. 이후 1950년 12월 24일 38선 일대를 방어하는 강원-춘천 부근 전투에서 산화했다.
■ 현충원(顯忠院)
현충원은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유공한 사람의 유골 또는 시체를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국방부 장관 소속하에 둔 묘지를 말한다.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었고 1965년 국릭묘지로 승격됐다.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안장 대상은 군인 및 군무원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자, 전사한 향토예비군,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이 현저한 자, 국장(國葬)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군인·군무원·경찰관으로 전투·공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퇴직 후 사망한 자, 임무수행 중 전사·순직한 경찰관,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자, 대한민국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 사망자 등이다.
-애드윌 시사상식 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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